청와대 내에 걸려 있는 역대 대통령 초상 |
청와대는 한편으로는 '독재'의 상징이었다. 한국의 초대 대통령부터 군부 출신의 대통령이 줄을 잇는 동안 경복궁을 앞에 둔 청와대는 애초에 경복궁의 후원으로 조성된 곳이어서 그런지 구중궁궐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권력은 BH라는 약자를 이용한 사기행각은 물론, 매관매직의 표상과도 같았다.
그나마 문민 정부나 문재인 정부 등을 거치면서, 청와대는 이전의 오명에서 벗어나는 듯 했지만, 역시 이명박이 광화문에 세운 콘테이너 성벽과 박근헤가 사들인 침대와 거기서 맞은 이상한 약물의 주사들로 인해, 다시금 청와대 해체나 대통령실 이전 논의가 일기도 했다.
그런데, 대통령실 이전은 묘하게 진행됐다. 왠지 진보 정부가 추진했어야 할 일은 오히려 문제가 되었던 보수 정당과 보수 정권에 의해서 그것도 갑작스럽게 진행이 되었다. 임기 마지막날까지도 기다리지 못해, 문재인 대통령을 내쫓다시피해서 비운 청와대는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명분으로 대통령실이 옮겨졌다.
그러는 통에 수백억의 예산 낭비가 벌어졌다. 무리수를 둔 이는 현재는 교도소 생활을 앞둔 윤석열이었다. 그의 이러한 결정에는 그 뒤에서 주술과 무속에 빠진 김건희가 청와대가 아닌 용산에서 지내고 싶다는 요구가 있었다고 본다. 아무튼 표면상으로는 청와대는 국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물론, 그러면서도 특히 아래 사진의 영빈관은 내외의 행사를 치르기 위해 지속적으로 사용이 되었기 때문에, 청와대를 방문해도 들어갈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영빈관은 마치 대한제국 시절의 석조건물들을 닮아 있다. 당시 일본에서 지어지던 건축물과는 다소 다르게 굵은 기둥과 선으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영빈관 건물 앞에는 해태가 지키고 있다. 해태는 불의 기운을 막는 물의 기운을 상징한다. 조선시대에 해태는 불에 취약한 목조건물을 화재로부터 지키기 위한 상징이기도 했고, 거짓말을 하거나 악한 짓을 하는 관리들을 물어버리는 정의의 상징으로서의 역할도 했다.
아래의 사진은 만찬 행사를 위해 마련된 영빈관의 모습이다.
영빈관은 외부에서의 접근이 가장 좋은 위치에 있다. 반면 청와대 본관은 영빈관보다 조금 더 들어간 위치에 있다. 앞뜰은 잔디광장이 펼쳐져 있어서, 간혹 봄, 가을에 행사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군 생활을 하면서 이 잔디 밭에서 행사를 치르는 일은 거의 보지 못했다. 오히려 보존을 위해 잘 가꾸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청와대의 본관은 아래의 얼개도를 보면 구조와 각 룸의 용도를 알기 쉽다. 본관과 좌우 별채는 내부에서는 긴 복도로 이어진 하나의 연결된 건물이지만, 밖에서는 독립적인 공간처럼 보이는 디자인을 하고 있다.

청와대의 실내에는 밝은 조명보다는 샹들리에를 중앙에 두고 명발광을 내는 은은한 조명을 갖춰두는 것을 기본 컨셉으로 하고 있다.
국무위원들의 회의 공간도 본관에 위치하고 있다. 본관의 우측(서쪽별채)에 위치한 세종실은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만나 회의 등을 진행하는 공간이다.
인왕실의 중정은 작은 연못과 꽃담, 화계, 사고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을 통해 한국식 정원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유리의 관리상태가 썩 좋지 않아서 투명하게 밖을 내다보기는 어려웠다. 중앙에 있는 그림은 바닷가 어촌 마을의 삶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마치 한라산을 상징하는 듯한 봉우리가 한 가운데에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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